08 갑신정변과 개항이후의 경제변화
개화 세력의 대두
개화 사상의 형성
배경 |
북학파의 영향, 양무운동(청), 메이지 유신(일본) |
인물 |
박규수, 오경석, 유홍기 등 |
주장 |
서양과의 통상(문호 개방)과 서양 문물의 수용 |
개화파의 형성과 분화
① 형성 : 박규수 등의 영향을 받은 젊은 양반 자제
② 분화 : 임오군란 전후 개화의 방법과 속도, 외교 정책을 둘러싼 의견 차이
구분 | 온건 개화파 | 급진 개화파 |
---|---|---|
중심 인물 |
김윤식, 김홍집, 어윤중 등 |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서광범 등 |
개혁 모델 |
청의 양무운동 |
일본의 메이지 유신 |
개혁 주장 |
동도서기론(전통 사상과 제도 유지, 서양의 기술만 수용) |
문명개화론(서양의 과학기술과 사상•제도까지 수용) |
대청 외교 |
친청 사대 정책 유지 |
청의 내정 간섭과 사대 외교 반대 |
갑신정변(1884)
배경
① 청의 내정간섭: 개화 정책 후퇴 → 급진 개화파의 불만 고조
② 급진개화파의 입지약화: 재정 확보책( 당오전 발행)을 둘러싼
민씨 정권과 급진 개화파의 대립, 김옥균이 일본에서의 차관
도입 실패
③ 국제정세의 변화: 청•프 전쟁 직전 조선에서 청군 일부 철수,
일본이 급진 개화파에 군사•재정 지원 약속
전개
① 발발 : 급진 개화파가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을 이용해 정변 을 일 으킴 → 고종의 거처를 경우궁으로 옮김, 민씨 정권의 요인 처단 ② 신정부 수립 : 새 내각 및 인민 평등권 제정 등을 담은 혁신 정 강 14개조 발표(근대 국가 수립을 위한 개혁 시도) ③ 실패 : 청군 개입, 일본군 철수 → 급진 개화파의 일본 망명
결과
① 청의 내정간섭 심화
② 한성조약(조선•일본): 일본에 배상금 지불, 일본 공사관 신축비용 부담 등
③ 톈진조약(청•일본): 청•일 군대의 동시철수, 향후 조선에 파병 시 상호 통보 등
의의와 한계
① 근대국가 건설을 목표로 한 최초의 개혁 운동, 갑오개혁에 반영, 독립협회 활동으로 계승 ② 일본에 의존, 농민의 토지개혁 요구 미반영 → 민중의 지지 부족
갑신정변 이후 국내외 정세
조선의 자주적 외교 노력
① 주미 공사 파견(박정양), 영국•독일 등에 전권 공사 파견
② 조•러 비밀 협약 추진 → 청의 방해로 실패
거문도 사건(1885~1887)
러시아 견제를 구실로 영국이 거문도 불법 점령 → 청의 중재로 철수
조선 중립화론 대두
① 부들러: 청•일본의 충돌을 막기 위해 한반도의 영세 중립화를 조선정부에 건의
② 유길준: 열강의 침략으로부터 조선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중립화론 제기
열강의 경제 침탈
개항 초기 일본 상인의 무역 독점
① 약탈 무역 : 치외 법권, 무관세 무역, 일본 화폐 사용 등의 특권이용
② 거류지 무역 : 일본 상인의 활동 범위가 개항장 10리 이내로 제한 → 객주, 여각, 보부상 등 조선 상인을 매개로 무역
③ 무역 양상 : 영국산 면제품 판매, 조선의 곡물 •금 등 수입
④ 결과 : 쌀값 상승, 조선 면방직업 몰락, 객주•여각•보부상 등 성장
일본과 청의 무역 경쟁
조청 상민수륙무역장정(1882) |
한성과 양화진에 상점 개설, 내지 통상 가능, 치외 법권 인정 |
조•일 통상 장정(1883) |
일본상품에 관세부과, 방곡령 조항 신설, 일본에 최혜국 대우 허용 |
결과 |
청일전쟁 후 일본이 조선의 상권 장악 |
조선의 대응
① 방곡령 사건
배경 |
일본 상인의 곡물 유출, 흉년 → 곡물 가격 상승 |
내용 |
• 조•일 통상 장정(1883)에 의거, 지방관이 방곡령(곡물 유출 금지령) 선포 |
결과 |
일본이 규정(1개월 전 일본에 통보) 위반을 이유로 철회 및 피해 보상 요구 → 방곡령 철회, 배상금 지불 |
② 조선 상인의 대응
시전 상인 |
상권 수호를 위해 청•일 상인의 점포 철수 요구 시위, 황국 중앙 총상회 설립(1898), 상권 수호 운동, 철시 투쟁 전개 |
경강상인 |
증기선 구입으로 일본 상인에 대항 |
상회사 설립 |
객주, 여각 등 : 대동 상회, 장통 상회 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