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 양성 운동과 농민•노동 운동

사회주의 사상의 유입

3•1 운동 이후 청년 •지식인층을 중심으로 전파 → 항일운동 전선이 사회주의 계열과 민족주의 계열로 분화

실력 양성 운동

물산장려 운동

배경

회사령 폐지, 일본 상품에 대한 관세 철폐 움직임

목적

토산품 애용을 통해 민족 기업 육성, 민족 경제 자립 도모

전개

평양에서 조만식 중심으로 조선 물산 장려회 설립
자작회•토산 애용 부인회 등 동참
‘내 살림 내 것으로’, ‘조선사람 조선 것’ 등의 구호 채택
토산품 구매, 근검절약, 저축장려, 금주•금연 주장

한계

토산물 가격의 상승 문제 발생
한국인 자본가와 일부에게만 이익이 된다고 사회주의 계열에서 비판

민립대학설립 운동

배경

식민지 교육 극복을 위해 고등 교육의 필요성

전개

조선교육회 중심으로 조선민립대학 기성회 결성(1923),
대학설립 자금 모금운동(‘한민족 1천만이 한 사람이 1원씩’이라는 구호 제시)

결과

• 일제의 탄압, 자연재해로 모금 활동 부진 → 실패
• 일제가 한국인의 불만을 무마하려고 경성 제국 대학 설립

농민•노동 운동

농민운동

• 토지조사사업, 산미증식계획 등에 농민처지 악화
• 농민•소작인 조합 결성, 생존권 보장 투쟁. 암태도 소작쟁의(1923)
• 조선 농민 총동맹 결성(1927)

노동운동

• 기업•공장 설립 증가 및 노동자 확대
→ 열악한 노동 조건에 대한 반발. 계급•민족의식 고조
• 노동조합 결성, 조선노농총동맹(1924)과 조선노동총동맹(1927)
• 임금, 노동조건개선 등. 원산총파업(1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