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운동 이전의 민족 운동

1910년대 국내의 민족 운동

① 의병 항쟁 : 서북 지방의 채응언 부대(1915년까지 활동)
② 비밀 결사 활동

독립의군부(1912)

• 임병찬이 고종의 비밀 지령으로 의병을 규합하여 결성
• 복벽주의(대한 제국 복원) 표방
• 전국적 의병 전쟁 계획, 일제에 국권 반환 요구서 발송 추진

대한광복회(1915)

• 박상진을 총사령, 김좌진을 부사령으로 결성
• 공화 정부 수립 목표
• 만주에 무관학교 설립 시도, 독립전쟁을 위한 군자금 모금, 친일부호 처단

기타

송죽회, 기성단, 자립단 등

국외의 독립운동

서간도

삼원보에 독립운동 기지 개척
경학사 조직(부민단으로 개편)
신흥 무관 학교에서 독립군 양성

북간도

명동•용정 등에 한인촌 형성
서전서숙•명동 학교 설립
간민회•중광단 조직(북로 군정서로 발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 신한촌 건설, 권업회
대한광복군 정부 조직(1914)
대한국민의회 결성(1919)

상하이

신한청년당 조직 → 파리강화회의에 김규식 파견

미주

대한인국민회, 흥사단, 대조선국민군단 등 결성


3•1 운동의 전개

배경

국제정세

레닌이 약소민족 지원 선언, 파리강화회의에서 미국 대통령 윌슨이 민족 자결주의 제창

국외 독립선언

대한 독립 선언(만주에서 지도자 39명의 이름 으로 발표)
2•8 독립 선언(일본 도쿄에서 유학생 주도)

국내 정세

일제의 무단 통치에 대한 반발, 고종의 죽음

준비

종교계의 연합과 학생 동참, 독립 선언서 작성과 민족 대표 구성, 고종의 인산일을 기하여 시위 준비

전개

① 국내에서의 시위 운동 확산

1단계
점화

민족 대표는 태화관에서 독립 선언서 낭독
학생•시민은 탑골 공원에서 독립 선언식 거행 → 만세시위 전개

2단계
도시확산

교통망을 따라 전국의 주요 도시로 확산
학생•시민•상인•노동자 주도

3단계
농촌확산

일제의 무력 진압에 맞서 무력저항으로 변화

② 국외 확산: 만주, 연해주, 미주, 일본 등지에서 만세 시위

탄압

헌병 경찰과 군대로 진압
민간인 학살(화성 제암리 사건)
유관순의 순국

의의

① 독립운동 주체를 학생, 농민, 노동자 등으로 확대
② 대한민국 임시 정부 수립의 계기
③ 무장 독립운동의 활성화 계기
④ 일제 무단 통치에서 ‘문화 통치’로 전환
⑤ 중국의 5•4 운동, 인도의 비폭력운동에 영향